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사 상륙작전 (문단 편집) === 상륙 개시 === 9월 14일 16시에 상륙부대를 싣고 부산항을 출발한 LST 문산호는 지원을 맡은 미 해군 엔디코트 함[* 전후 회고에서 이명흠 대위는 자기들을 호송했던 구축함이 영국 해군 Q-34 함이라고 주장했다.]과 해상에서 합류하여 작전 지역으로 이동했다. 문산호에는 엔디코트 함과의 통신을 위해 2명(해리슨 중위, 쿠퍼 상사)이 파견나와 있었으나, 이들이 갖고 온 통신장비는 [[https://en.wikipedia.org/wiki/SCR-300|SCR-300]] 워키토키 1조가 전부여서 불안 소지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바로 9월 13일에 태풍 케지아(Kezia)가 일본 [[규슈]] 지방을 직격하고 동해상으로 빠져 나간 뒤여서, 바다의 사정도 몹시 안 좋았다. 문산호는 천신만고 끝에 9월 15일 새벽 05시경에야 장사동 해안 외곽 4㎞ 지점에 도달했으나, 해안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있었고 아직도 파도가 매우 높아 정확한 상륙지점을 분간하기도, 해안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렇게 장사동에 도착한 문산호는 새벽 5시 30분경 선미 닻을 내리고 접안을 시도하지만 높은 파도로 인해 닻이 끊어져 버리면서 바람에 의해 해안선에 평행으로 놓이며 좌초되버린다 이렇게 문산호가 해안 인근에서 좌초되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장사동 인근 고지에 위치한 북한군 방어부대가 문산호를 먼저 포착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상륙부대에게는 운이 나쁘게도, 장사동 일대에는 포항 일대의 격전 와중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제5사단 제12연대 예하 병력이 전선에서 물러나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장사동은 해안가 마을 주변이 고지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라, 기습을 달성하지 않는 이상 이들 고지에 자리잡은 북한군 방어부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곳이었다. 악천후로 기습상륙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문산호를 향해 집중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어부대의 박격포탄이 지근탄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정상적인 접안이 불가능해지자, 이명흠은 7명의 특공조를 차출하여 해안으로 밧줄을 들고 헤엄쳐 가서 백사장의 소나무에 연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특공조들은 강풍과 파도, 맹렬한 사격에 휘말려 전사하기를 반복했으며, 결국 추가 특공조들이 편성된 끝에 해안과 4개의 밧줄을 잇는 데 성공한다. 이명흠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여 해안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밧줄을 붙잡고 2중대에게 상륙을 개시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 사이에 문산호는 계속 집중포화를 얻어맞아 05시 30분부터 선미의 기관부 등이 고장, 침수되며 통제력을 잃고 기울어진 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06시경이 되자 암초에 들이받혀 해안 부근에 그대로 좌초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제1 유격대대 대원들은 지휘관의 독려 하에 계속 상륙을 이어갔다. USS 엔디코트 함이 이 과정에서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5인치 함포]], [[보포스 40mm 포]] 등을 총동원해 지원사격에 나서서 그나마 작전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제일 먼저 상륙에 나선 1중대(제28연대로 위장) 대원들이 상륙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던 북한군의 해안 토치카 3곳을 파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대대는 09시까지 상륙을 완료하여 잔적 소탕과 교두보 확장, 북한군의 역습 대비를 시작했다. 2중대(제29연대로 위장)는 200고지 우측으로 우회하며 이 일대에 구축된 북한군의 해안 방어진지 공격에 나서서 차례로 무력화시켰다. 이어 대대 전력을 정비하고 200고지에 지휘소를 차린 이명흠은 나머지 병력을 이용해 271고지를 공격, 이곳까지 확보해 교두보를 공고히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초기 상륙과정에서의 피해는 막심했다. 정확한 사상자 집계는 어렵지만 대대 부관을 맡은 백운붕 대령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전사 60여 명, 부상 90여 명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지휘관급 장교들의 손실도 뼈아팠다. 상륙부대 중에 최고참 장교는 전술고문으로 배속된 [[전성호]] 현역 대령이었는데, 그도 상륙 당시의 혼란 속에서 전사하였다.[* 기록마다 전사 경위에 차이가 있다. 일설에는 문산호 선장실에서 작전회의를 하다가 박격포탄이 선장실에 낙하하는 바람에 대퇴부 과다출혈로 전사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는 밧줄에 의지해 상륙하는 과정에서 적의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고도 한다. 조각배를 타고 남쪽으로 구원을 청하러 가다가 배가 뒤집혀 익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전성호]] 대령은 다른 지휘관들이 모두 현역 위관급인데 반해 유일하게 영관급 장교이자 연대급 부대의 지휘 경력이 있는 인물이어서 안타까운 손실이었다.[* [[전성호]] 대령은 사후 육군 준장으로 추증되었으며, 독립운동 공적을 함께 기려 1980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상륙 직후 적 진지 제압을 이끌었던 1중대장 이영훈 중위(임시 대령)도 이 와중에 전사하였다. 더군다나 가뜩이나 부족했던 탄약과 물자 상당수가 강행상륙 과정에서 바다에 유실되고 말았다. 대신 이 과정에서 상륙부대는 북한군 39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했으며, 토치카 9곳을 파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북한군의 직사포 2문[* 북한군이 다수 장비하고 있던 소련의 45㎜ 대전차포 (M-42)로 추정된다.]과 포탄 450상자, 지프 1대, 기관총 45정, 로켓포 1문, 따발총 5정 등을 노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